원룸에서 동선이란 게 나올 수 있는가?

한 명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원룸에서 동선을 논하는 건 어불성설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침대에 누워서 발로 냉장고 문을 열 수 있을 만큼 좁은데 무슨 동선이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좁은 집일수록 동선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간섭의 문제입니다.
공간이 좁을수록 가구 하나, 문 하나가 제 동선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입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장애물 경주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자취방에서 동선이 왜 생존의 문제인지 현실적으로 짚어봐야 합니다.
이 글은 5-8평 정도의 원룸 자취방을 생각하고 작성했습니다.
1. 현관-주방-화장실
병목 현상
원룸의 절반 이상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한쪽에는 싱크대, 반대쪽에는 화장실 문이 있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모든 비극이 시작됩니다.

퇴근길의 정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는데, 현관 앞에 둔 쓰레기봉투 때문에 화장실 문이 안 열립니다. 화장실을 가려면 일단 쓰레기봉투를 옆으로 치워야 합니다. 신발을 벗는 공간과 요리하는 공간, 씻으러 가는 공간이 1평도 안 되는 곳에 밀집되어 있다 보니 생기는 일입니다.
요리와 통행의 충돌
친구라도 한 명 놀러 온 날엔 더 가관입니다. 제가 라면을 끓이고 있으면 친구는 화장실에 갇혀서 나오질 못하거나, 제가 비켜줘야 겨우 나갈 수 있습니다. 좁은 집에서 동선이 꼬인다는 건 타인의 존재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는 뜻입니다.
2. 침대-옷장
클라이밍 혹은 테트리스
10평 이하 원룸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건 침대입니다. 이 침대를 어디에 두느냐가 그 집의 모든 동선을 결정합니다.
벽장 문과의 사투
붙박이장이 있는 원룸인데, 침대를 놓고 나니 옷장 문이 45도밖에 안 열립니다. 매일 아침 그 틈새로 손을 집어넣어 옷을 낚시하듯 꺼내야 합니다. “내일은 꼭 침대를 옮겨야지” 하지만, 옮길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결국 매일 아침 강제로 손가락 근육을 단련하게 됩니다. 억울합니다..
창문으로 가는 길
침대를 창가에 붙였더니 창문을 열거나 환기를 시키려면 침대 위를 기어 올라가야 합니다. 낭만적인 침대 생활이 아니라 유격 훈련이 따로 없습니다. 동선이 불편하면 환기도 안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방에서 묘한 홀아비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제가 분명 봤습니다. 침대 너머 창문을 포기하고 곰팡이와 동거하던 제 친구를요..
3. 콘센트 위치
멀티탭과 전선이 만드는 ‘지뢰밭 동선’
원룸은 콘센트 위치가 고정적입니다. 하지만 내 가전제품과 가구는 내 맘대로 두고 싶죠. 여기서 ‘전선 동선’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줄타기 인생
침대 머리맡에 충전기를 두고 싶은데 콘센트는 주방 근처에만 있습니다. 결국 5m짜리 멀티탭을 사서 방을 가로지르게 됩니다. 밤에 물 마시러 가다가 그 전선에 발이 걸려 휘청합니다. 좁은 집에서 동선이 나쁘다는 건 단순히 불편한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충전의 번거로움
노트북은 책상에서, 폰 충전은 침대에서, 드라이기는 화장실 앞에서. 각각의 활동 구역이 전선 때문에 엉망으로 꼬이면 집 안에서 이동할 때마다 발밑을 조심해야 합니다. 기상입니다..가 아니라 기상하자마자 전선에 걸려 넘어질 뻔한 적, 다들 한 번쯤은 있잖아요? 추측이 아니라 실화입니다.
4. 세탁기-건조대
‘통행 금지 구역’의 설정
원룸 동선의 끝판왕은 빨래 건조대입니다.
거실 실종 사건
빨래를 널기 위해 건조대를 펼치는 순간, 그날은 방 안에서 이동할 권리를 포기해야 합니다. 화장실을 가려면 건조대 밑으로 기어가거나 꽃게처럼 옆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좁은 집에서 동선 효율이 낮다는 건, 빨래 하나 널었을 뿐인데 생활 공간 전체가 마비된다는 의미입니다.
의자의 다용도화
결국 건조대 펼치기가 귀찮아서 의자에 옷을 걸치기 시작합니다. 의자는 이미 옷 무덤이 되어 앉을 수가 없고, 결국 침대 위에서 밥을 먹고 노트북을 합니다. 모든 동선이 침대 하나로 수렴되는 ‘침대 블랙홀’ 현상입니다. 슬프지만 현실입니다..
저는 더 나은 동선을 위해 가구 배치를 바꾸기도 했는데요, 책상과 책장 사이 2미터도 안 되는 통로를 지나가는 게 그렇게나 귀찮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책장을 넘어서 누울 자리로 갑니다 … ^^ 바보짓과 게으름을 한 번에.
- 가구 문 열어보기: 침대가 들어갈 자리를 가늠해 보고, 그 상태에서 옷장 문과 냉장고 문이 ‘활짝’ 열리는지 확인하십시오. 문이 열리는 각도가 90도가 안 되면 불편함을 각오하셔야 합니다.
- 콘센트 위치 파악: 내가 주로 머물 곳과 콘센트 사이의 거리를 보십시오. 전선이 방을 가로질러야 할 것 같다? 쉽지 않습니다.
- 현관의 여유: 신발을 벗고 들어와서 바로 가방을 던져둘 공간이라도 있는지 보십시오. 그 한 뼘의 공간이 동선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가구에 정강이를 찧지 않고, 다 안 열린 틈을 비집고 옷을 꺼내야 하는 슬픔을 겪지 않으시기를 바라며…….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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